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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받아들인 순간, 내 인생이 시작됐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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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김진원 | 작성일25-12-02 11:48 | 조회수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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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엔 제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장애가 있다는 게 부끄럽고, 받아들이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저는 뇌전증가 지적장애가 있지만,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노동자입니다.’ 올해로 만 36세가 된 김세희 씨는 인천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뇌전증을 앓았고, 지적장애 진단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터를 지키며,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장애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 김세희 씨는 전문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졸업 후에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여러 복지시설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 시절은 그녀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런 나를 부정했지만 사회에서는 나를 그 기준으로 보더라고요. 일은 열심히 했지만 불이익을 감당해야 했고, 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던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좌절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를 곰곰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을 부정한 것이 그 이유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삶의 근거지를 청주에서 인천으로 옮기고 장애인고용공단을 찾았다. 최초이자 처음으로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기로 했다. ○ 그렇게 장애를 받아들이고 첫발을 디딘 일터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이었다. 김세희 씨에게 그곳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존중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한 곳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직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에 발발한 의정갈등 때문이었다. 계약이 조기 종료되었고,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시련으로 다가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전 같았으면 무너졌을 텐데, 그땐 아니었어요. 나는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히 있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 그렇게 다시 일자리를 찾은 끝에 인천연구원에 합류하게 됐다. ”처음엔 단순한 서류 정리부터 시작했어요. 복사하고 정리하고, 반복적인 일들이었죠. 하지만 하루하루가 달랐어요, 뭔가 내가 ’하고 있다‘,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비로소 직업인이 되었다, ’나는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매일 되새겼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자존감이 생겼고 스스로를 인정하게 됐어요.‘라고 인터뷰를 건넸다. ○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사람들 눈도 못 마주쳤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스스로 소개할 수 있죠.“ ● 그녀는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처럼 장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혼자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면, 삶은 정말 달라질 수 있어요.‘ ◉ 마지막으로 김세희 씨는 아직도 더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일도 많다. 앞으로는 컴퓨터 활용 능력을 더 키워 좀 더 다양한 업무를 맡아보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처럼 일하고 싶은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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